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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사정: 가릴 것이냐 말 것이냐

unidesu 2020. 1. 2. 17:44

 

 
 
말레이시아의 국교*는 이슬람교로 약 3,200만 인구 중 60% 가량을 차지하는 말레이 인구가 무슬림이다. 그렇다면 약 2,000만 인구가 무슬림이라는 소리고, 남녀 성비가 대충 50:50 정도라고 가정했을 때 약 1,000만명의 말레이 여성이 히잡을 쓰고 다닐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헌법에 말레이시아가 “이슬람국가(Islamic state)”라고 명시되어 있진 않고 연방의 종교가 이슬람(Islam is the religion of the Federation)이라고 표현되어 있어 애매하지만 여기서 구체적으로 따지는건 생략함

 
 

히잡을 쓴 완아지자 총리부인 (출처: wikipedia)

 
 
히잡(Hijab)은 직계가족이 아닌 남성들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와 가슴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가리개 또는 베일을 뜻하는 아랍어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어로 가리개를 뜻하는 뚜동(Tudong) 또는 뚜둥(Tudung)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된다.  
 
그런데 말입니다? 분명히 생긴건 말레이 사람인데 왜 저 사람은 히잡을 안 쓰지? 라는 의문을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다. 무슬림 여성이라면 다들 히잡을 써야 하는거 아닌가? 
 

말레이 여성들의 히잡史

 

50년대를 주름진 말레이시아 배우들 (출처: The Star)

 
 
5-6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말레이시아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날 이슬람 보수주의를 추구하는 이슬람정당(PAS)의 지역기반이자 말레이시아 보수의 끝판왕인 끌란탄(Kelantan)주의 무프티(Mufti: 종교지도자)의 부인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 때랑 지금이랑 분위기가 엄--청 달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히잡을 착용한 여성들은 히잡 착용을 고급문화(High Culture) 취향으로 인식해서 착용한 것이지, 종교적인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50년대 히잡 스타일 (출처: http://sayangmelaka.blogspot.com)

 
 
70년대 초반에도 히잡은 장례식이나 종교행사에서나 착용하는 것으로 인식되었고, 평상시에 히잡을 착용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심지어 범죄자처럼 보인다고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금지하는 회사나 은행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70년대부터 말레이시아 대학가를 중심으로 이슬람주의 운동이 불기 시작했다. 외간남자가 있는 자리에서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 문제와 여성의 아우랏(aurat: 이슬람율법에 따라 노출해서는 안 되는 신체부위)을 가리는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그러던 와중에...
 
1979년에 이란 혁명이 빵 터짐. 이란 혁명을 계기로 이슬람 종교 지도자들은 여성의 머리카락을 아우랏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히잡 착용을 요구했고, 이런 움직임이 말레이시아를 포함한 다른 이슬람국가들까지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0~80년대의 이슬람 부흥운동(Dakwah Movement)의 영향으로 종교적 의무의 실천이 강조되면서 대부분의 닥와단체들은 무슬림 여성들에게 "이슬람적인" 복장을 착용할 것을 요구했고 이 시기부터 무슬림 여성들이 긴 바주꾸룽(Baju Kurung: 전통의상)과 히잡을 착용하게 되었다. 왜 가만히 있는 여자들한테 불똥이...
플러스로 1981년부터 마하티르가 총리로 집권하면서, 무슬림 민심을 얻기 위해 다양한 무슬림 관련 정책들을 펼치면서 말레이시아의 이슬람화에 일조하게 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그렇다면 말레이시아 무슬림 여성들은 반드시 히잡을 착용해야 하나?

여기까지 읽었으면 당연히 YES 라고 생각하겠지만, ㄴㄴ 말레이시아는 이란처럼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 착용을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무슬림 여성 인권단체인 Sisters in Islam (SIS)에서 2019년 10월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슬림 여성의 60% 이상이 머리카락을 가리지 않아도 신앙심에 전혀 지장이 없다고 답했고, 응답자 중 83%는 여성들이 히잡 착용을 스스로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62%의 응답자가 무슬림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 없다고 답했다.
 
 

마하티르 전 총리의 부인인 시티 여사도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다 (출처: themalaysianreserve.com)

 
 
일반인들도 히잡에 대한 인식이 저렇고 무슬림 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성들의 머리카락을 아우랏으로 봐야할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왜냐하면 코란에도 여성들의 머리카락은 아우랏임! 이라고 적혀 있지 않기 때문. 연방령주의 무프티인 줄키프리 선생님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것은 무슬림 여성의 선택이라고 했구요... 

 

줄키프리 전 연방령 종교지도자 (출처: wikipedia)

 
 
그렇다면 왜 어떤 사람은 히잡을 쓰고 어떤 사람은 안 쓸까? 신앙심이 깊은 사람은 쓰고 신앙심 없는 사람은 안 쓰고 그런건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것도 많은 이유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이 논문에 따르면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에 대해 늘 착용파, 불착용파, 가끔 착용파로 나뉘는데, 이 안에서도 착용/불착용/가끔 착용하는 이유가 다 제각각인 것으로 나온다.
 
늘 착용파의 이유
- 코란에 히잡을 착용하라고 나와서 착용함 
- 여자의 머리카락은 남자를 성적으로 유혹하기 때문에 여자는 정숙을 지키기 위해 착용해야 함
- 히잡을 착용하기 전에는 무슬림으로서 부적절한 (클러빙, 남자들이랑 어울리는 것 등) 행동을 했었는데, 히잡을 착용하면 신앙심이 더 깊어지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착용함
- 히잡 착용이 필수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무슬림 여성들과 연대하는 표시로 착용함
 
불착용파의 이유
- 히잡은 한 번 착용하고 벗는게 아니라 착용을 일단 하면 무슬림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데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음
- 히잡을 착용한 채로 위선적인 생활을 하는게 더 죄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착용 안 함
- 코란을 신중히 공부한 결과 여성의 히잡 착용이 필수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현대사회에서는 (특히 해외여행을 할 때) 히잡을 착용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에 착용하지 않음 

가끔 착용파의 이유
- 기본적으로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직장동료들이나 부모님들의 눈치 때문에 가끔 착용함
 
 
특히 연예인들 중에 가끔 착용파가 많은 듯 한데, 아래 두 여배우들은 히잡 착용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주장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지옥에 떨어지라는 등 가루가 되도록 까인 적이 있다. 흠좀무...
 
 

히잡 미착용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은 두 말레이 여배우들 (출처: Fathia Latiff Facebook, Malaymail)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말레이시아 무슬림 여성들은 히잡을 반드시 착용할 필요가 없다. 다만 착용하는 것이 무슬림 여성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해서 착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히잡이 신앙심과 상관 없다고 생각해서 착용 안 하는 사람들도 있고..각자 다양한 이유로 착용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 중에는 착용하고 싶지 않은데도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의 압박 (심지어 안 쓰면 때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무슬림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 때문에 착용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