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안경점 추천글이 아님을 미리 밝힘. 안경 구매와 관련된 탐구활동 수기 내지는 무료한 일상 속에서 소소하게 도전정신을 발휘해 본 후기랄까…
시간 많고 심심한 사람들만 읽길 바람.
인생의 절반을 안경인으로 살아왔지만, 안경구매는 언제나 긴 망설임과 결정장애를 수반하는 성가신 작업으로 여겨졌음.
그 이유는, 말레이시아에서 파는 안경들은 하나같이 1) 괜찮지만 비싸다 2) 싸지만 구리다 3) 비싸면서 구리다 - 이 세 가지 범주에 속하기 때문에 괜찮으면서 저렴한 안경을 사는 일이란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기 때문.
물론 무슨 안경을 써도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면 싸고 구린걸 사도 무방할테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비싼것들 중에서 골라야 그나마 어울리는 안경을 찾을 수 있다는 슬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음.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괜찮은 안경테를 고르는 간단한 일조차 어려운 미션이 될 수 밖에 없는 것.
그러다보니 말레이시아에서 살면서 산 안경들은 하나같이 테도 비싸고 렌즈도 비싸고 뭔 알 수 없는 코팅들로 떡칠을 해 더 비싼 - 도합 20-50만원대의 비싼 것들 뿐이었는데, 언제가부터 도대체 안경을 왜 비싼 것을 써야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했음.
다른 사람들이 한국에서 맞췄다는 안경은 가격도 저렴하고 내가 가진 안경보다 생김새도 예쁜데 나는 왜 비싸기만 하고 그저 그런 안경을 꾸역꾸역 사온거지?
그렇게 각성한 이후로 처음 산 안경은 whoosh (Focus Point에서 운영하는 저가라인 프랜차이즈)라는 안경점에서 10만원 이하에 산 노브랜드 안경이었음. 다행히도 몇 년 전부터 말레이시아에도 괜찮아보이는 테들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해 이 때 산 안경은 저렴하지만 만족스럽게 잘 착용하고 있었음.
이 시기에 드디어 안경테에 대한 알 수 없는 허영심은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렌즈에 대한 알 수 없는 집착은 여전히 버리지 못 해 이 때도 렌즈는 곧 죽어도 호야꺼를 샀었음.
아무튼 그러다 최근 들어 안경테가 낡기 시작해 새로운 안경을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평소에 눈여겨 보던 안경을 드디어 시도해볼 수 있겠다는 기대에 차 있었음.
지금까지 남녀 불문하고 다양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오버사이즈 안경을 착용한 모습을 지켜봐온 결과, (그렇다, 오버사이즈 안경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오버사이즈 안경은 그 어느 누가 써도 무난하게 어울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심지어 얼굴이 작아보이는 효과까지!), 그렇다면 내가 써도 이상하진 않을 것 같다는 작은 믿음이 생겼기 때문.
그 후로 쇼핑몰에 갈 때마다 안경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알 큰 안경이 있나 없나 슬쩍 확인하곤 했는데, 내가 못 찾는건지 뭔지 내가 원하는 크기의 오버사이즈 안경은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음.
코로나 이후로 온라인으로 안경을 판매하는 안경점들이 늘어나 안경점 사이트에도 들어가봤지만… 역시나 마음에 드는 안경은 보이지 않았음.
그나마 좀 괜찮나…? 싶으면 가격이 이렇고👇
가격은 그렇다치고 혹시나 시착을 해보면 달라보이지 않을까 싶어 가상착용도 시도해보았으나…
그냥 뽀샵되는 카메라앱 스노우 알죠? 거기서 안경 아이콘 선택하면 나오는 어색어색한 합성 느낌… 정확히 어울리는지 안 어울리는지 판단이 안 섬.
결국 말레이시아에서 원하는 안경테를 발견할 수 있을거라는 기대는 빠르게 접고 그냥 한국에서 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하기로 함. 요즘은 해외거주자들을 위한 안경 맞춤서비스를 제공하는 안경점들도 많아지기도 했으니…
처음엔 한국에서 안경테와 렌즈를 둘 다 맞출까 고민을 했었는데, 안경 도수를 체크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우선 기존에 쓰고 있던 안경을 한국으로 보내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진입장벽으로 다가왔음. 여분의 안경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쓸만한 서비스라고 생각하지만… (난 여분이 있어도 보내고 받고를 해야되는게 넘나 귀찮게 느껴졌😩)
그래서 결국 한국에서 안경테만 주문하고 렌즈만 여기에서 맞춰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름.
실제로 착용을 한 다음 사는게 아니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브랜드가 있는 비싼 안경테를 사는건 무모하다고 판단했고, 네이버쇼핑에서 2만원대에 판매되고 있는 상품을 선택함.
https://m.smartstore.naver.com/2ditor
일주일 후에 항공택배를 통해 안경테가 도착했고, 착용해보니 역시나 만인의 무나니 안경답게 무난하게 어울리길래 다음 스텝으로 렌즈 구매처 물색에 착수함.
안경테도 2만원밖에 안 하는데 렌즈도 기왕이면 저렴한걸로 맞추고 싶은 마음에 본격적인 웹서핑에 돌입을 했는데, 렌즈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네임드면서 비싼 호야나 칼자이스밖에 모르는 렌알못이라 우선 저렴한 렌즈와 비싼 렌즈의 차이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함.
그러다 여러 안경사들이 인터넷에 쓴 글들을 살펴보고 여태까지 몰랐던 사실들을 몇 가지 알게 됐는데, (이 의견들은 일부 안경사들과 안경인들의 의견인 점을 참고)
- 안경렌즈 시장은 예전과 달리 상향평준화 되어 저렴이와 고렴이간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지 않다고 함
- 다만, 눈이 심각하게 나쁜 사람이라면 고급렌즈를 쓰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함 (근데 어떤 사람들은 또 첫 날만 그렇게 느끼고 이틀째부터는 똑같다고 하기도 하고요)
- 저렴한 렌즈를 쓰더라도 요즘 나오는 것들은 99%는 UV코팅이 되어있다고 보면 되고 도수만 제대로 맞춘다면 저렴한 렌즈를 썼다고 눈이 더 나빠지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함
- 안경은 저렴이든 고렴이든 코팅이 중요하기 때문에 코팅이 벗겨지거나 기스가 많이 나면 교체해야 함 (교체 주기는 1.5-2년 권장)
- 안경은 무조건 안경수건으로 닦아야 하고 하루에 한 번 정도 흐르는 물에 닦는 식으로 관리해야 오래 쓸 수 있음
결론:
- 안경을 안 쓰면 생활이 곤란할 정도로 눈이 엄청 나쁘고 (고도근시) 안경관리를 잘 할 자신이 있으면 고급렌즈 선택
- 근시도수가 -3.0 이하인 경도근시고 안경을 함부로 다루는 편이라면 저렴한 렌즈를 선택해도 무방
고급렌즈를 쓰더라도 교체주기가 1.5-2년이라면 너무 비용이 많이 깨지는거 아닌교?! 그래서 난 어차피 경도근시이기도 하고 돈 없는 그지라 차라리 저렴한 렌즈를 1-2년마다 교체하는게 낫겠다는 결정을 내림.
(그나저나 한 번 안경 사면 깨지거나 스크래치가 나지 않는 이상 평생 쓰는 건줄 알았는데 교체 주기가 있었다는 사실이 가장 쇼킹이었네)
그런데 여기는 한국이 아니라 믿을만한 한국산 렌즈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이고, 호야나 니콘, 짜이스 같은 수입렌즈가 비싸서 싫다면 결국 선택지는 중국산 렌즈밖에 없을 듯 한데… 그렇다면 인지도 없는 쭝궈 제조사의 찐 ‘중국산 렌즈’의 품질은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
물론 중국산 렌즈도 요즘은 다 괜찮다는 글이나 알리에서 중국산 렌즈를 주문했다는 글도 보긴 했지만…
여전히 석연치 않아 온갖 검색어를 바꿔가며 구글링을 하다하다 나중엔 중국웹, 일웹까지 들여다보고 급기야 중국 안경렌즈산업 보고서까지 읽고 앉아있는 스스로에게 살짝 질려버림.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가?
결국 웹에서는 내가 원하는 속시원한 답을 찾지 못 해 급기야 과거 안경 관련 일에 종사했던 분께 물어보게 되었는데, 그 분에 의하면 ‘어차피 요즘 나오는 렌즈들 90% 이상은 중국에서 만들고 중국산 렌즈들도 요즘은 다 잘 나온다’고 함.
그럼 이제 안경점에 가서 마음 편히 저렴한 렌즈로 맞추면 되겠다!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not so fast… 아직 나에겐 현지인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작업이 남았음.
말레이시아 최대 온라인 포럼인 로우얏(Lowyat)의 유령회원으로서 로우얏 피플들은 현지 렌즈 사정에 대해 어찌 생각하나 궁금해 그들의 생각을 살펴봤더니 사람 사는거 다 똑같다고 얘들도 대부분 하나같이 짜이스 호야 타령… (다들 돈 많아? 어?)
그러다 문득 희한한 점을 하나 발견했는데, 안경렌즈 관련 글마다 어떤 유저가 매번 강제로 소환이 되고 있었던거임.
안경이나 렌즈와 관련된 글에는 거의 반드시 언급되는 Hunakadoo라는 유저. 이 사람은 도대체 누구길래 자꾸 안경과 관련된 글마다 머리채가 잡혀들어올까? 이 의문으로부터 시작된 호기심은 결론적으로 안경렌즈를 저렴하게 구매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됨.
대충 알아본 결과, 이 후나카두라는 유저는 2009년부터 현재까지 로우얏 포럼에서 활발하게 활동중인 로우얏 고인물로, 직업은 안경사고 Setapak에 위치한 Ideal Optique라는 안경점에서 근무하고 있는 걸로 파악됨. 작성한 게시물들을 살펴보면, 로우얏 게시판에 가게 홍보글이나 프로모션 글을 주기적으로 올린 흔적들이 보이고, 안경과 관련된 글에 소환될 때마다 장사꾼 냄새가 나지 않는 정직한 어드바이스를 제공해온 행보로 인해 로우얏 내에서 ‘안경 구루’라는 포지션을 구축하게 되었고 나름 로우얏 유저들로부터 신임을 받는 사람인 듯한 인상을 받았음.
자신의 프로필 페이지에 적은 가게 홍보 내용을 보면 시중가격보다 20-40%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고 다양한 안경렌즈를 취급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음.
로우얏 내에서의 평판과 꾸준한 영업글, 자신의 비즈니스를 노출시키는 전략의 일환으로 수년간 무료로 제공해온 상담서비스, 이 사람을 통해 안경을 구입한 사람들이 남긴 긍정적인 리뷰 등을 바탕으로 훌륭한 영업능력을 갖춘 괜찮은 안경사라는 확신이 든 나는 이 사람의 가게에서 안경렌즈를 맞추기로 결심함.
그리하여 비록 로우얏 아이디는 없지만 데일리 눈팅러로서 동료커뮤인 느낌을 내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아이디를 언급하면서 접근해봄.
대화해보니 답장 속도도 빠르고 구글맵을 바로 보내주는 센스까지 갖췄길래 한 번 가게를 방문해보기로 했고, 그 다음날 점심시간에 들르기로 함.
위치는 PV128과 Setapak Central 쇼핑몰에서 가까움. 그런데 주차가 convenient하기는 개뿔…ㅎ 막상 가보니 Setapak 운전자들이 총출동한 듯한 주차상황을 목도하고 마음이 갑갑해졌음.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정말 주차에 대한 타협수준이 상당히 높은 거 같음. (스트릿파킹 정말 극혐…🤯)
매장 외관은 이렇게 생겼고, 양 사이드에 왓슨스와 세븐일레븐이 자리 잡고 있음.
매장에 들어가서 Mr. Teng을 찾으니 한 인상 좋아보이는 말차남이 자신을 Teng이라고 소개를 함. Teng에게 어제 whatsapp을 보낸 사람임을 알리고는 한국에서 주문한 안경테를 보여줌.
새로 시력 검사를 할건지 묻길래 그냥 기존 안경이랑 같은 도수로 맞춰달라고 했고, 허튼소리 하기 전에 렌즈에 돈을 많이 쓰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확실히 밝힘.
그랬더니 보여준 렌즈가 이거였는데…
CST+라는 렌즈. 렌즈 재료는 일본산이고 제조는 일본이나 한국에서 이루어진다고 설명이 되어 있으나….너무나 일본산인척 하는 중국산 렌즈 스멜이 나지 않나요? 집에 와서 검색해보니 대만 렌즈 회사인 듯 해보였고,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에 주로 수출을 하는 듯 했음.
이건 중저가 렌즈고, 만약 medium-high를 원하면 코닥이나 호야를 보여주겠다면서 이 가격표를 보여줌.
비싸…!
바로 Nooooo 하고 어차피 내 목적은 저렴한 렌즈를 구입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한 쌍에 120링깃인 CST+ 렌즈를 구입하기로 함. 블루라이트 차단도 원하냐고 묻길래 돈 더 내야하냐고 물어보니 120에 포함이 된다 함? 그럼 왜물?
알고보니 블루라이트 차단은 원래 별도로 60링깃을 내야하는건데 지금 프로모 진행중이라서 120링깃에 포함이 되는거라고 하길래 프로모 언제까지 하냐고 물으니 계속 한다 함. ㅎ?
안경렌즈를 장착하는데는 1일이 소요된다 함. 혹시 몰라 배달을 원하면 어레인지도 가능하냐 물었더니 된다 함. 플렉시블하고 좋군요?
결제는 오늘 해야되니? 찾을 때 해야되니? 물으니 업투유 라길래 그냥 오늘 하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나와의 whatsapp 대화창을 다시 확인하더니 (아무래도 로우얏에서 보고 온건지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듯?) 캐셔언니에게 give best price라고 함.
ㅎ? 이미 120이라고 니가 아까 나한테 말했잖아? 생색을 내기 위한 멘트인걸까… 아님 뭔가 더 차지할게 있었는데 만걸까… 좋게 생각하기로 함.
오후 12시반쯤 안경테를 맡겼고 그 다음날 오후 4시에 찾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음.
안경을 받자마자 착용했을 때는 적응하느라 살짝 아주 사알짝~ 기분이 드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지금은 아주 만족스러움. 그 동안 써왔던 호야 렌즈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진짜 모르겠음. 잘 보이고 선명하면 된 거 아니겠습니까?
물론 쓰다보면 코팅이 빨리 벗겨진다던가 할 수 있는 변수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건 두고봐야 알 거 같고, 눈이 그닥 나쁘지 않은데 저렴한 안경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괜찮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함.
서두에서 말했듯이 이 글은 이 안경점을 딱히 추천하는 글은 아님. 누구나 안경 구매기준이 다르고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안경은 각자 알아보고 사는게 맞을 듯 함. 그리고 만약 저렴한 안경을 사고 싶으면 쇼핑몰에 많이 입점돼 있는 whoosh에서 사도 되긴 함. 다만 나처럼 한국에서 테를 사고 렌즈만 맞추고 싶은 경우라면 이 안경점이 친절하게 잘해줬으니 집에서 가깝다면 여길 가보셔도 괜찮겠다~ 이 정도?
이 글은 그냥 어느 날 흔한 안경점에서 대충 안경을 사는게 시시하게 느껴진 한 인간이 오덕 짬바로 파고들어 조사를 하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임드 유저로부터 안경을 구입하는 모험을 해봤다는 스토리, 그러니까 도전기이자 모험기인 셈.
여튼 Setapak 근처에 사는데 안경 맞출 때 된 사람이라면 한 번 가보셈.
끝.
Ideal Optique
+60 3-4131 3225 / whatsapp
https://goo.gl/maps/aCCrZtMtZ4bB1LP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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