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사회 & 정치

말레이시아의 드레스코드 이슈 (복장규제, 옷차림 검열)

unidesu 2023. 6. 30. 10:54

'드레스 코드', '패션 폴리싱', '입장 거부'

 
대략 2015년부터 주기적으로
말레이시아 뉴스기사에 등장하는 키워드들임  
 

말레이시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나 
경찰서나 이민국, 도로교통국(JPJ) 같은 관공서에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들이라면
관공서에 복장규정이 있는 것 정도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을테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관공서 공무원들 복장규정을 말하는건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음




공무원 드레스코드도 물론 있지만
여기서 말하는 드레스코드는
방문자, 즉 민원 접수를 하는 민원인들을
대상으로 한 복장규정을 의미함

다시 말해
말레이시아에서는 민원인들이 관공서에 갈 때
복장규정에 맞는 옷차림을 하고 방문해야 함
 



국립모스크 같은 이슬람 성원에 가본 사람들이라면
입구에서 주바(Jubah)라는 👇
해리포터 의상처럼 생긴 옷을 입어야
입장이 가능했던 경험이 있을텐데



그 이유는 비무슬림들이 모스크에서
아우랏(aurat)을 가리는 것이
무슬림들에 대한 예의라고 보기 때문임

아우랏은 이슬람율법에 따라
노출해서는 안 되는 신체부위를 말하는데
머리카락을 가리고
살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는 것을 의미함

모스크는 종교시설이니까
종교에 대한 리스펙트로 그렇다 쳐도
관공서는 왜?
라는 의문이 생길텐데

말레이시아는 인종 비율이
말레이, 중국, 인도, 기타가
6:2:1:1 정도이고
 
관공서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90%가 말레이계임 

말레이계=무슬림
관공서=무슬림이 모여있는 곳

무슬림이 모여있는 곳에 갈 때는
TPO에 맞게 옷을 입어라
이런 로직으로 보임





할튼 그래서 관공서에 갈 때
입어도 되는 복장은
와이셔츠, 카라티, 긴바지,
무릎 아래까지 오는 치마
신발은 운동화, 구두, 로퍼 등이고
 
수수하지 않고
노출이 심하다, 예의에 어긋난다
여겨지는 복장은 다음과 같음
 
민소매
무릎이 보이는 치마 
짧은 반바지
몸에 달라붙는 바지/치마
찢어진 청바지
슬리퍼


그래서 관공서에 갈 때는  
팔 다리는 다 가리는게 좋고
슬랙스 같은 긴바지나
롱드레스나 롱스커트 입으면 안전빵임



사실 예전에는
앵간히 노출이 심한 옷을 입지 않는 이상
그냥 평소에 입던대로 입고 가도
입장을 저지 당하거나 하는 일이 없었는데

대략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수수하지 않고 부적절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관공서 입장이 거부되는,
입밴 사건이 주기적으로 일어남

피크에 달했던게 2015년이었고
그 이후로 입밴 기사는 거의 매년 보도되고 있음

특히 올해초부터는 거의 매달
입밴 기사를 접하고 있는데
그다지 짧은 옷을 입지 않았는데도
입장이 거부되거나
교통사고를 당해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긴급한 상황에서도 옷차림 때문에
경찰서 입장이 거부되거나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옷차림 때문에 진료를 거부당하는
황당한 일들이 늘어나고 있음

그만큼 어이 없게
입밴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소린데


이 포스팅을 통해 말레이시아에서
관공서 복장규정이 언제부터 생겼고 비무슬림들이
옷차림 때문에 관공서에 입장거부 당하는 일
얼마나 자주 있는지 살펴보고자 함





JPJ 같은 관공서에 가본 사람이라면
아래 그림과 같은
복장규정 안내문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임
 
 

JPJ 방문객 복장규정

 

JPN (호적등록처) 방문객 복장규정

 

예전에도 관공서에서 복장 지적을
받았다는 케이스들은 있었지만
이렇게 ‘드레스 코드’! 에티켓!하면서
호들갑스럽게 안내문까지 비치하진 않았었는데

이처럼 ‘드레스 코드’ 안내문이
본격적으로 생기게 된 계기가 있는데
그게 바로 2015년 JPJ 사롱 사건



2015년에 한 중국계 여성이
왼쪽 사진처럼 입고 JPJ에 갔다가
직원으로부터 업무를 보려면 다리를 가리라고
사롱(오른쪽 사진)을 건네받은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이 SNS에 올라와서 난리가 났었음

난리가 난 이유는 당연히
이 옷이 뭐가 어때서?
무슬림도 아닌데
이 옷 갖고 짧다고 가리라는건 오바아님?
이런 반응이 많았기 때문

반대로 JPJ 직원의 행동을 옹호하는
무슬림들도 많았는데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JPJ가 이 일로 인해서 사과문을 올림

그런데 그리고 나서
복장규정을 지키지 않는 방문자는
입장이 거부된다는 메시지와 함께
아래 사진을 올리면서
아예 방문객 드레스코드를 정해버림



이 드레스코드가 만들어진 이후
너도나도 따라해
지금은 경찰서, JPJ뿐만 아니라
의회, 국립대학, 국립도서관 등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모든 공공기관들에 가면
로비에서 복장규정 안내문을 볼 수 있음



 


복장규정 안내문을 보면
'Selaras dengan
Prinsip Rukun Negara yang Kelima'
라는 문장을 볼 수 있는데, 
영어로는 이▽ 뜻이고
 

 
 
해석하면 말레이시아 국가원칙 '제5원칙'에 따라 
방문객들이 수수하게 입고 와야 한다는 말임 
 
 

복장규정이 있는 것도 거시기한데 원칙까지 있?

 
 
국가원칙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영어로는
National Principles (Rukun Negara)
라고 하는데
 
1969년에 인종폭동이 일어난 이후
우리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 인종들끼리 사이좋게 지내자! 
를 다짐하기 위해 세운 원칙임
 
 

말레이시아의 국가원칙

 
 
제5원칙
예의 바르고 도덕적으로 행동하자는 내용인데

정부에서는 바로 이 원칙에 따라
복장규정을 준수해달라고 하는 것임
 
 
인구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는 말레이들은
어차피 무슬림이고 어차피 늘 가리고 다니니
복장규제 대상이 아닐테고
 
규제 대상은 사실상
중국계, 인도계, 외국인을 포함
수수하게 입을 이유가 없는
모든 비무슬림이 해당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인종폭동 사건을 계기로
국가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가원칙을 들고와서
그 중 하나인 도덕, 예의에 관한 원칙을 바탕으로
복장규정을 만들었다고 말해버리면
 

 
무슬림이 다수인 공간에
비무슬림이 방문을 할 때는
무슬림들이 정한 드레스코드에 따르는 것이
도덕적이고 예의 바른 행동이고 
안 그러면 무례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되고
다소 익스트림한 사람들은
이걸 국가화합에 반하는 행동이라고까지
비약할 수도 있는 거임
 
 

뭐… 그래도…
다수가 예민하다는데 어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잘 지키고 살고 있음



2015년 JPJ 사롱 사건 이후
이 정도로 바이럴이 됐으면
이와 유사한 일이 당분간은
안 일어날법도 하건만

이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복장이슈가 또 다시 여러 곳에서 발생했고

옷차림 때문에 사롱을 건네받은 일
클리닉에서 진료를 거부 당한 일
심지어 KLIA 공항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찾으러 분실물센터에 갔다가
반바지를 입었다고 입밴 당하고
결국 긴바지를 빌려입어야 했던 여행객도 있었음

2015년 한 해에만 이런 일이 연속적으로 생기자
하원의회에서도 이 문제가 격하게 논의됐었는데

결국 그 당시 총리실 장관
정부에서 정한 복장규정은 공무원들만 대상이고
민원인들은 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민원인의 복장이 부적절하다고
여겨지더라도 입장을 거부하지 않고
민원서비스를 제공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해명을 함






그 뒤에 어떻게 됐을까요?









ㅇㅇ 계속 복장 검열할거임 ㅅㄱ



저 사진 속 여성들은 의회에 일이 있어서
방문한 NGO 직원들인데
저 정도로 짧지 않은 무릎 기장 치마를 입었는데도
그 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다니다가
이 날은 복장이 단정하지 못 하다며
경비원에 의해 입장을 제지 당했다고 함


이게 2017년에 있었던 일이구요…



놀랍게도 2018년부터는 복장규제 기사를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음

2018년에 처음으로 정권교체가 됐고
다인종정당이 속한 PH 정부가 집권을 하게 되면서
공공개혁, 차별근절 이런 것들을 중시하고
새로운 말레이시아를 만들어가자는
분위기가 컸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생각함

그럼 왜 2020년부터는
그 유명한 이슬람당이 속한 말레이계 정부가
다시 들어섰는데도 복장규제 이슈가 없었을까?

그 때는 코로나 시기여서
정부에서 락다운을 하도 해대고
관공서에 확진자 나올 때마다 폐쇄하는 바람에
복장규제고 뭐고 할 틈이 없어서… ㅎ
그들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 없는 현상이었음


왜냐하면 2022년부터는
그 동안 옷차림 검열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대?
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코로나가 좀 풀리자마자
예전보다 더 파워업된 기준으로
옷차림을 검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



이 여성분은 조호주에서 관공서에 갔다가
이런 어떻게 봐도 기장이 긴 옷차림을 했는데도
경비원이 ‘니가 입은 옷은 노출이 많고 점잖지 않다’며
비무슬림들은 발목까지 오는 긴 옷이나
긴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옷차림을 검열했다 함

이제는 무릎을 덮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고
발목까지 보이면 안 되는 걸로
업그레이드




2022년 10월에는 말레이시아 국립대학이
50주년 학위수여식 드레스코드에
금지된 복장으로 위와 같은 복장들을
예시로 들어 논란이 있었음
특히 중국계와 인도계의 전통복장까지
금지복장에 포함돼서 더 논란됨
무슬림은 전통복장을 입어도 되지만
비무슬림 전통복장은 노출이 많아서 안됨

 


근데 2022년 11월에 다시 정권교체 됐잖아
PH가 다시 정부로 돌아왔고
개혁의 아이콘인 안와르가 총리면
이제 이런 일 없어지는거 아냐?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지만

두 가지 이유로 불가능함

1. PH 정부가 아니라 통합정부라서
2. 총리도 결국은 무슬림임


지금 정부는 정치적 이념도
목적도 다 다른 정당들끼리
서로 싫지만 권력 유지하려고 협력하는 형태라
말로는 안정적이다 하지만
그닥 안정적이지 않음

야당에서는 뻑하면 말레이, 무슬림 이슈로
여당한테 딴지를 걸고 있는 상황인데
이게 말레이 유권자들한테 잘 먹히기 때문에
여당에서는 복장검열처럼
소수인 비무슬림들이나 불편해하는 이슈
강력하게 하지마라! 할 수가 없음

이 건과 관련해서 비무슬림을 옹호하는 말을
조금이라도 했다가는

저봐라 비무슬림만 챙기는 정부라니까
역시 무슬림 챙기는건 야당뿐이지

이럼서 야당쪽으로 민심이 쏠릴 수가 있기 때문임

게다가 무슬림 입장에서는
비무슬림들이 가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는게 더 낫지 않겠음?
솔직히 잘못됐다고 생각도 안 할 듯
그러니 대놓고는 말 안 해도
속으로는 와이 낫…? 할 듯


하여간 여당이나 야당이나
말레이계들의 눈치를 겁나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올해 들어
일부러 이러나? 싶을 정도로
복장규제랑 관련된 뉴스들이 계속 나오고 있음



 


1월에는 교통사고를 신고하러 까장경찰서에 간 여성이
7부바지 정도 되는 바지를 입었는데도
바지가 짧다고 경찰서에 입장거부된 일이 있었고

 
 


2월에는 이포에 있는 병원에 간 여성이
바지가 짧다는 이유로 응급실 입장이 거부됐었음

 
 


그로부터 며칠 뒤, 이번에는 조호 관공서에
사업허가를 갱신하러 간 여성이
옷속이 비치고 치마 기장이
발목까지 안 덮는다는 이유로
경비원에 의해 엘리베이터 탑승이 거부됐었으며


 


3월에는 입밴 사건이
여기저기서 많이도 일어났는데…
3월 8일에는 병문안을 위해
파항병원을 방문한 여성이
바지가 무릎을 가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입장이 거부됐고

 
 


3월 13일에는 슬랑오르 경찰서에서
무릎 아래까지 오는 치마에 자켓까지 입었는데도
옷차림이 부적절하다며 경찰이 신고 접수를 거부함
 

 


3월 14일에도 이포 관공서를 방문한 여성이
원피스가 무릎이 보여 입장이 거부됐고

 


3월 18일에도 바지가 짧다는 이유로
슬라양병원에서 입장을 거부당함
 
 

 
가장 최근에는 끌란탄에서
옷차림 때문에 과태료를 부과 당하기까지 함




여기까지 읽었으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비무슬림들도 국민인데
적당히 예의 차리면 됐지
무슬림처럼 둘둘 싸매라는건
너무 과한 거 아님?
정부에서 무슨 조치라도 해야 하는거 아님?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위에도 썼다시피

1. 정권이 불안정해서
정부가 말레이계(무슬림) 심기를 거스를 수 없음

2. 정부에서 피드백을 하긴 하는데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는 등
강력한 조치는 안 취함

3. 드레스코드는 각 공공기관 재량이고
2번 때문에 공무원들이 신경 안 씀
그리고 공무원들도 중요한 표밭이라
정부가 공무원들 눈치도 봄

4. 지금 정부에는 비무슬림 정당도 있지만
2018년에 비무슬림 정당에
권력이 많이 주어지자
2020년에 정부가 전복된 적이 있어서
발언권이 약하고 몸을 사림




그래도 외국인들은 괜찮지 않을까?



음…



일단 나부터도 검열당한 적이 있어서…ㅎ
(입장거부까진 아니지만
직원한테 옷 짧다고 지적 당했었음
참고로 무릎 덮는 기장이었음)


외국인들 복장은 절대 규제 안 할걸?
이라고는 말 못 함



다만 코로나 이후로
한국도 그렇지만
전세계적으로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화가 많아진 상태고
말레이시아도 인종주의, 타인종 배척
이런게 심해지고 있는 추세라…

외국인 입장에서는 괜히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임


물론 모든 관공서들이 옷차림 갖고 난리치고
무조건 입장 거부하고 그러는건 아님
대다수의 관공서들은 저 위에 사례들처럼
빡빡하게 굴지 않고
무릎이 보이더라도 입장 거부하지 않는 곳이
훨씬 많을 듯

그리고 입장을 거부한다고
아예 못 들어가는게 아니고
긴 천이 있으면 그걸로 가리거나
긴 옷으로 갈아입고 오면
다시 들어갈 수 있음
(귀찮고 짜증나서 문제지)


가장 좋은 건
이런 복장규정을 염두에 두고

경찰서, JPJ 뿐만 아니라
정부예산으로 운영되는
국립병원, 국립도서관, 국립대학 등
무슬림들이 많은 곳에 갈 때는
팔다리를 모두 가리는 긴 옷을 입는게
지적 당할 일도 없고 안전할 거임